• 진주민속소싸움대회

  • 스페인에 정열의 투우사와 용맹스러운 투우(鬪牛) 들소가 있다면 한국에는 옆집 아저씨 같은 훈훈한 포스의 우주(牛主)와 투우 황소가 있다. 둘 다 원형경기장에 소와 사람이 들어가 있고 싸움이 펼쳐진다는 점에서 비슷한 속성을 지녔지만, 스페인의 그것이 사나운 소와 인간의 대결이면서 종내에는 잔혹하게 소를 죽이는 도살게임이라는 점에서 정서적인 반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에 비해 우리의 소싸움은 어떠한가! 잔인한 무기를 가진 인간과 소를 싸움에 붙이지 않는다. 동일한 종(種) 안에서도 같은 체급끼리 정정당당한 싸움을 붙인다. 이때 소는 선수이고, 우주는 감독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진주뿐만 아니라 소싸움의 고장 청도, 그리고 관광사업 차원에서 후발대로 소싸움에 뛰어든 의령 등 다양한 곳에서 소싸움을 선보인다. 하지만 진주는 백년 넘는 전통을 가진 소싸움의 발원지로써의 위엄을 가진 고장이다. 물론 한국의 소싸움은 소를 가축으로 부리며 초동이 소를 몰고 다닐 때부터 심심풀이 위주로 소끼리 싸움을 붙인 데에서 유래한 점을 감안했을 때, 감히 내력을 추측할 수 없을 만큼 오래된 것이긴 하다. 허나 이에 규칙을 만들고 하나의 경기로 정형화시켜 축제의 장으로 정착시킨 곳은 진주가 최초였다.
     
    오랫동안 소싸움을 봐왔던 사람들의 구술에 따르면 처음에는 그저 자연발생적으로 시작했다가 점차 진주의 성내와 성밖의 집단 소싸움으로 변화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추석 대목을 전후로 남강 백사장에서 한바탕 큰 판으로 열리기도 했다고. 몸값 비싼 소를 살 수 있는 부농들이 소싸움을 위해 머슴을 고용해 소 관리를 전적으로 맡길 정도였다고 하니, 적어도 지금의 곱절이 넘는 지대한 관심이 있었나 보다. 그 옛날에는 소싸움이 있는 날이면 “부잣집 뒤주 열어 놓는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온 마을 전체가 축제의 도가니였다.
     
    진주의 소싸움은 매년 봄가을에 펼쳐지는 논개제와 개천예술제, 남강유등축제 등 커다란 메인축제와 병행하여 열리는데 그 규모가 전국구에 달한다. 이때만큼은 영남일대 시민들은 물론이요, 저 멀리 수도권 시민들까지 진주 소싸움 축제의 현장으로 흡수시키는 마성의 기간이다. 1897년 정식적인 첫 대회를 시작해 올해 2013년 부로 축제 121회째를 맞이했다. 사람으로 치면 1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무병장수하는 진주 축제의 안방마님인 격.
     
     
                                          

    축제의 현장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흰 옷을 입은 늠름한 소의 그림이 마스코트가 되어 객들을 반긴다. 이 캐릭터의 이름은 ‘맹우(猛牛)’. 맹우는 일제강점기 때 살았던 소의 이름으로 당시 소싸움에서 뿔이 부러지는 극한 상황에서도 우승을 차지하고 만 전설적인 싸움소였다고. 이는 마치 당시 일제의 압제에도 굴하지 않고 혼신의 힘을 다해 그들에게 항거했던 백의민족의 혼을 보는 것 같았을 테다. 온몸이 만신창이가 됐지만 그 싸움을 포기하지 않던 맹우를 보며 그때의 우리 민족들은 알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느끼지 않았을까.
     
    두 마리의 싸움소는 서로 홍문과 청문에서 동시에 입장한다. 어느 한쪽이 1초라도 먼저 입장하게 되면 후에 들어온 소가 기세에 눌려 경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꽁무니를 빼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입장한 소들은 잠시간 모래를 파거나 그 모래에 몸을 묻으며 탐색전을 펼치기도 하고, 탐색전 없이 서로에게 곧바로 달려드는 경우도 있다. 뿔로 서로의 머리를 들이받으며 팽팽한 힘겨루기를 하기도 하고 뿔걸이, 뿔치기, 머리치기, 연타 등의 다양한 기술을 선보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관객들은 열띤 응원과 환호를 반복한다.
     
    그렇게 싸움이 계속되다가 어느 한쪽이 먼저 지쳐 혀를 내빼거나 침을 흘리며 꽁무니를 빼면 승패는 완전히 결정난다. 싸움에서 이긴 소는 우주를 등에 태우고 승리의 위세를 떨치며 당당히 퇴장하지만 패배한 소는 주인을 따라 조용히 나간다. 비록 졌기로서니 우주는 소를 질타하지 않는다. 오히려 잘했다고, 애썼다며 지친 소를 쓰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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